루벤스--반혁명의 칼 preview & review


No 1975 Socialist Worker(영국) 2005년 11월 5일


전시회


루벤스-그의 붓은 반혁명의 검이었다


루벤스 회화의 새 전시회는 역사와 함께 조명되어야만 한다고 존 몰리뉴(John Molyneux)가 말한다.


페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위대한 화가였다. 회화를 즐기거나 미술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현재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작품 전시회 <루벤스: 구조의 대가 Rubens: A Master in the Making>에서 즐거움, 어쩌면 영감까지도 얻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회는 기성의 미술계와 미술에 대한 그들의 접근법이 그 미술의 이해와 진정한 감상에 어떻게 장애물로 작용하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사례이다.


전시회는 루벤스의 양식을 틀지운 예술적 영향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미술 전문가적” 접근법으로, 미술사와 나머지 인간 역사를 분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물론 이 방법은 가치 있는 정보들을 전달해 준다. 그러나 문제는 이 방법이 많은 것을 빠뜨리고 있다는 데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 방법론은 생애의 후기에 생산된 루벤스의 최고 걸작을 빠뜨리는 걸로 나타났다. 당연하게도 이 방법론은 그의 예술을 사회 정치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루벤스와 관련해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그의 예술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당대 유럽 역사의 기본적 사실들을 반드시 알아야 하고 더불어서 그 사실들이 갖는 진정한 사회적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해야만 한다.


루벤스의 생애는 유럽 전역에서 벌어졌던 중대한 투쟁과 겹쳐 있었다. 전통적인 역사에서, 특히 예술사에서 이 사건은 구교와 신교,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사이의 단순한 종교적 갈등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본질에 있어서 그 사건은 신흥 중간 계급, 다시 말해 부르주아지와 구래의 특권 계급 사이의 투쟁, 종교의 깃발 아래 수행된 자본주의와 봉건주의 사이의 전투였다. 그 사건은 최종적으로 유럽과 나머지 세계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투쟁이었다.


이 투쟁의 최전선 가운데 하나가 네덜란드였고, 루벤스는 그곳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


네덜란드는 애초에 국가도 아니었고, 당시에 유럽의 지배적 군사 열강으로 에스파냐에 근거를 두고 맹위를 떨치던 카톨릭 봉건주의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방 영토에 불과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초기 자본주의 경제 발전과 칼뱅주의의 중심지였다. 칼뱅파는 신교 중에서도 가장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분파였다.


1566년에 네덜란드는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에스파냐 왕 펠리페 2세가 이 혁명을 분쇄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네덜란드의 남부에서는 이 반혁명의 진압이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후에 벨기에가 된) 이 지역은 에스파냐의 지배를 계속 받았다.


그러나 북부에서는 혁명파가 완강하게 저항했다. 이 지역은 세계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인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루벤스의 아버지는 안트베르펜의 법률가로 단호한 칼뱅주의자였다. 1568년에 그는 탄압을 피해 독일의 베스트팔렌으로 도주한다. 그곳에서 루벤스가 태어났다.


루벤스의 아버지는 1587년에 죽었다. 1589년에 루벤스와 그의 어머니는 안트베르펜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루벤스는 카톨릭으로 개종한다. 그것은 반혁명에 가담한다는 의미였다.


이 사건은 루벤스의 예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 카톨릭 교회가 의식적으로 미술을 반종교개혁의 문화적 무기로 동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루벤스는 만토바 공작의 궁정 화가로 이탈리아에 갔고, 거기서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기의 대가들(, 그리고 반역자 카라밧죠)의 미술을 연구했다.


그는 수많은 제작 주문에 응해 어질어질하게 소용돌이치는 인물들로 거대한 캔버스를 채워넣으며 교회와 궁전의 벽을 장식했다.


렘브란트 및 할스와 같은 네덜란드의 화가들이 가난 속에서 죽고, 카라밧죠가 도망 중에 사망했음에 반하여 루벤스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유명한 화가라는 명성 속에서 죽었다. 프랑스, 에스파냐, 영국의 왕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루벤스가 반혁명의 화가였다고 해서 그의 예술이 형편없어지거나 아무런 흥미꺼리가 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선 그는 엄청난 재능에 기술적 수완이 완벽했다. 그는 자신의 대의에 부합하는 가치들을 왕성하게 표현했다. 그가 속해 있던 교회와 종교의 권세와 영광을 말이다. 이와 함께 그의 작품은 (고전적 신화의 외피 아래서) 인간 성정의 감각적 즐거움을 예찬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학이 분명하게도 그의 예술을 훼손했고 제한했다. 그의 작품은 숭고하지만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할스와 렘브란트에게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민중의 삶과 통찰력, 공감, 연대 의식도 결여되어 있다.


풍경화 <헤트 스텐 Het Steen>이나 누드 초상화 <털옷을 걸친 헬레나 푸르망 Helene Fourment> 같은 위대한 작품들은 그의 생애 말년에 탄생했다. 그가 후원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린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이번 전시회의 초점이 아니다.


☞ <루벤스: 구조의 대가 Rubens: A Master in the Making>는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2006년 1월 15일까지 전시된다. www.nationalgallery.org.uk를 방문하시오.


★ 李在嬉 옮김/sumbol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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